연출이란 연출자의 감정적, 지적, 예술적 가치를 프로그램에 투영시키는 전 과정을 말한다. 문제는 연출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세계(reality)가 실제 존재하는 현실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훌륭한 연출자는 그 간격을 최대한 줄이려고 할 것이다. 창의적인 연출이란 그 간격을 얼마나 독창적으로 표현하느냐에 달려있다. 연출자의 창의성 개발은 단순히 능숙한 테크닉을 단련시키는데 있지 않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창의성은 면밀한 의도나 계획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말했다. 가슴으로 느끼는 연출이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나라 방송계에서 흔히 프로듀서를 PD라고 줄여서 부른다. 그러나 하는 일을 보면 프로그램 기획과 제작비 집행을 하는 프로듀서(producer)와 카메라로 영상을 만드는 연출을 하는 디렉터(director) 두 가지 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PD는 Producer and Director의 줄임말이 맞다. 물론 선진국에서는 기획과 연출은 엄격히 구분되어 있다. 감독(Director)의 고유 역할은 대본의 가시화(visualization)다. 여기서 '가시화'란 글로 되어 있는 것을 영상화하는 것을 말한다. 드라마에서는 대본의 가시화이고 시사나 다큐멘터리에서는 카메라를 들고 나가서 현장을 카메라에 선별적으로 담는 것을 말한다.
"연출자가 가시화 과정에서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할 것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화면에 담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연출자는 카메라앵글, 렌즈와 특수효과를 통해 이미지를 만들어서 현실을 대변하는 것을 창출해 내는 것이다."
이는 뉴욕대학교 앨런 워첼(Alan Wurtzel) 교수의 표현으로 TV 매체에서 '연출'을 가장 적절히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현실(reality)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는 없고 '현실을 대변하는 것(representation of reality)'을 카메라와 장비를 가지고 'manipulate'한다는 것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현실은 있는 그대로이고, 우리가 TV에서 표현하는 것은 현실의 묘사일 뿐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이 'manipulate'다. 한국말로 하면 '조작'이란 뜻이 되어 매우 부정적으로 들린다. 그런데 'manipulate'란 말은 사실, 가지고 있는 자원을 활용해 무엇인가를 만들어 낸다는 뜻이지 '조작'처럼 없는 것을 만들어 왜곡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연출'이란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카메라와 장비를 이용한다는 뜻이다. 엄밀히 말하면 연출가는 현실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표현하는 그림과 이미지를 가지고 일을 한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연출을 하는 전 과정을 통해서 연출자의 감정적, 지적, 예술적 가치가 프로그램에 투영된다. 여기에 연출의 어려운 점이 있다. 단순히 대본이나 현실을 카메라를 통해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대본을 통해 느낀 점을 혹은 현실의 이미지를 카메라를 통해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연출자의 가치가 같이 투영되고 이 주관적 가치가 동시에 영상화되기 때문이다.
1. 연출 연습은 마음으로
연출을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 연출자는 연출을 하기 전에 마음의 눈으로 프로그램 라인을 가시화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다. 프로그램의 가시화란 프로그램의 전체 이미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컷 바이 컷(cut by cut)'으로 연결되는 구체적인 디렉팅을 말한다. 이는 촬영 콘티를 짜는 것과 다른 이야기다. 눈을 감고 촬영할 컷을 사이즈와 앵글로 연상해 보는 것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하면 할수록 연출의 심도와 완성도는 높아지고 좋은 디렉팅이 나온다. 미국의 영화 학교에서 쓰는 매우 효과적인 연출 연습 방법이다.
작가인 윌리엄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은 이런 말을 했다. "부인, 나의 스토리에서 사용하는 모든 단어는 사전(dictionary)에 다 들어 있습니다. 단지 알맞은 문장에 단어들을 배열하는 것이죠." 어쩌면 이 말이 TV 연출자의 작업을 가장 적절히 표현한 것일지 모른다. 연출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배열(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연출자에 따라 문장과 배열의 순서는 많은 차이를 나타낼 수 있다. 이것이 연출자의 예술적, 창의적, 논리적 능력의 차이다.
2. 연출은 선택이다
연출이란 선택을 하는 과정이다. 연출자 앞에는 수많은 선택이 기다리고 있다. 어떤 배우를 선택할 것인가? 어떤 숏을 선택할 것인가? 어떤 컷을 선택할 것인가? 어떤 세트를 선택할 것인가? 어떤 음악을 선택할 것인가? 어떤 구성을 선택할 것인가? 등등. 당연한 말이지만 잘못된 선택은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떨어뜨린다.
연출자는 세 가지 요소를 기반으로 선택이란 힘든 작업을 한다. 성격 묘사(characterization), 공간(space), 시간(time)의 세 가지 요소가 그것이다.
1) 성격 묘사
성격 묘사(characterization)란 반드시 인물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화면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물에 성격이나 특성이 부여된다. 이때 어떤 특성을 부여할지는 프로그램 포맷에 따라 달라지며, 작가나 연출자가 결정하게 된다. 그리고 그 특성을 '화면에 어떻게 묘사하는가'는 연출자의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는 드라마, 시사·다큐멘터리, 예능 등에 모두 해당된다.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이 예술적으로, 감성적으로, 지성적으로 어떻게 표현되어야 할 것인지는 오로지 연출자가 판단해야 할 몫이다. 그리고 연출의 미묘한 차이를 느끼는 예민한 시청자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2) 공간
공간(space)은 화면을 말한다. 그 화면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는 연출자의 공간 지각 능력과 예술적 감각에 따라 달라진다. 화면의 깊이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헤드룸(headroom)과 룩룸(lookroom)을 어떻게 할 것인가? 주요 등장인물의 화면 사이즈와 앵글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처럼 공간을 채우는 문제는 연출자가 항상 고민하고 결정해야 하는 부분이다. 공간 채우기는 PD들이 보통 하는 연출을 말한다. 연출자의 미적 감각은 이 공간 채우기에서 나온다.
3) 시간
시간(time)의 문제도 공간과 마찬가지로 매우 복잡하고 예술적 능력을 시험하는 부문이다. 공간을 채운 다음 그것을 얼마만큼의 시간 동안 화면에 잡아 두고 언제 다음으로 넘길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시간의 지속 문제는 묘사되는 대상의 중요성과 묘사하는 방법도 깊은 연관이 있다. 기본적으로 짧은 시간 할애는 낮은 중요도를, 긴 시간 할애는 높은 중요도를 나타낸다. 짧은 시간의 연속적 사용은 긴박감을, 긴 시간 할애는 편안함을 나타낸다. 촬영과 편집 때 시간 할애 부분은 연출의 중요한 역할이다.
3. 연출자의 창의성 개발
뛰어난 프로그램 제작에 필요한 창의성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창의적인 연출가가 돼서 더 좋은 기획을 독창적으로 만들어 내고 더 창의적인 아이템을 찾을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의 뇌를 개발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리는 뇌의 70%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뇌의 기능을 20% 정도밖에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디어는 뇌에서 나온다. 독창성, 창의성도 그렇다. 뇌 전문가들은 창의성도 개발이 가능하다고 한다.
우선 지금까지 알려진 생각의 과정을 살펴보자.
우리의 뇌는 수십억 개의 신경세포(neuron)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신경세포는 시냅스를 통해 연결된다. 연결된 숫자는 수조 개로 지구상의 모래 숫자보다 많다고 한다. 우리의 경험은 그것이 직접 경험이든지, 책을 통한 간접 경험이든지, 아니면 상상에 의한 것이든지 뇌의 신경세포에 빠짐없이 기록된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바로 끄집어낼 수 있는 의식의 부분에 저장될 수도 있고, 당장 끄집어낼 수 없는 무의식 혹은 잠재의식 부분에 저장될 수도 있다고 한다. 무의식 부분이 60% 이상을 차지한다.
생각을 한다는 것은 뇌 속에 저장된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이고, 끄집어낸다는 것은 각각의 신경세포 뭉치들을 네트워크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연결이 되면 상식적이고 도식적인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이고, 연결이 평상시와 다르면서 잘 되면 창의적으로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나오게 된다.
1) 선입견 많으면 좋은 연출자가 못 된다
나이가 들수록 신선한 아이디어가 줄어들고, 어릴수록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아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아는 것이 많다는 것은 선입견을 가지기 쉽다는 뜻도 된다. 선입견은 고정관념이다. 경험이 많으면 '무엇이면 무엇이다'라는 등식의 성립이 쉽게 된다. 즉, 무슨 생각을 하려고 하면 과거의 경험으로 뇌 속의 신경세포 다발이 쉽게 네트워크를 형성해 버리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고정관념이 많아지기 때문에 새로운 생각, 즉 새로운 신경세포 네트워크가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노인이 되면 고집이 세다. 이 말의 뜻은 노인이 되면 형성된 고정관념을 바꾸려 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이가 들어도 사고의 유연성을 가지고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계속 나오는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다.
반면 어린아이들은 아는 것이 많지 않아서 고정관념이 별로 없다. 뇌 속의 신경세포 네트워크가 자유스럽게 연결된다. 그래서 신선한 아이디어가 나온다. 그러나 뇌 속에 저장된 정보(경험)가 많지 않은 상태에서 연결이 자유스럽게 되어 나오는 아이디어나 창의성은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새롭긴 한데 폭이 넓지 않고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2) 많은 정보를 뇌 속에 저장하라
가장 좋은 방법은 많은 정보량을 가진 뇌가 신경세포의 네트워킹을 무한대로 자유스럽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일단 우리 뇌의 신경세포 저장소 속에 많은 정보를 저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프로그램 기획을 위한 창의성을 최대한 증대시키기 위한 좋은 정보란 어떤 것일까? 이미 만들어진 프로그램은 창의성 증대를 위한 가장 좋은 정보다. 많은 프로그램을 뇌 속에 저장하라. 영화든, TV 프로그램이든, 광고든, 뮤직비디오든 많이 보라. 포맷에 관계없이 많이 보는 것이 정보를 저장하는 것이다. 특히 영상물은 프로그램 기획과 직접 연관이 있는 정보다. 되도록 완결성이 있는 영상물을 많이 보라. 완결성이 있다는 것은 연속극보다는 영화나 단편 등 한 편에 스토리가 완결되어 끝나는 것을 말한다. 완결성이 있는 영상물은 저장이 더 쉽게 된다. 또한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만 보지 말고 두루 넓게 많은 분야를 보라. 코미디에 관심이 있다면 코미디도 보지만 심각한 수사물이나 폭력물도 보라는 것이다. 다큐멘터리가 전문이면 극영화도 같이 많이 봐야 한다. 클래식이 전문이면 록 음악도 같이 보라. 〈왕의 남자〉와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이준익 감독은 지독한 영상광이다. 특별한 지식이 없이 이 감독은 엄청난 양의 영화를 봤다. '봤다'기보다는 '뇌에 집어 넣었다'. 그의 작품은 자신이 본 영상의 재결합인 것이다.
뇌에 저장된 정보가 많아졌다면 이젠 저장된 정보를 '어떻게 꺼내느냐'가 관건이 된다. '어떻게 꺼내느냐'보다 저장된 많은 정보를 '어떻게 연결시키느냐'가 맞는 표현이다. '어떻게 연결시키느냐'는 '뇌 속의 신경세포에 저장된 기억들을 어떻게 연결시켜 색다른 네트워크로 만들어 내느냐'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3) 엉뚱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라
천재는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라. 까만 스웨터와 청바지의 스티브 잡스(Steve Jobs)도 고생 끝에 만들어진 천재다. 잡스는 위원회나 시장조사 등에서 아이디어를 찾지 않는다. 본인의 신념과 직관이야말로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데 핵심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잡스는 "위대한 제품은 기호의 승리이며 기호는 공부와 관찰 그리고 인간이 만든 최고의 것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그것을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접목시키는 문화에 젖을 때 나온다"라고 말한다. 그는 아이디어는 집단 행동에서 나오지 않고 우수한 개인들의 머리에서 나온다고 굳게 믿고 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도 "창의성은 면밀한 의도나 계획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말했다.
요즘 기업에서는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을 하지 않는다. 그 머리가 그 머리인 사람들끼리 모여서 같은 소리를 열 번 백 번 반복하고 머리를 두들겨 봐야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리 없기 때문이다. 나이트클럽에 가서 실컷 춤추고 오면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지 모르겠다. 하버드대학교의 허버트 벤슨 박사(Herbert Benson, M.D.)는 이를 'break out point'라고 부른다. 보색처럼 전혀 다른 형태의 생각이 만나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창출되는 지점이 생긴다는 것이다. 폭력과 로맨스, 심각한 다큐멘터리와 〈개그콘서트〉, 뉴스와 시트콤, 토크쇼와 클래식 음악회, 정치 토론과 포르노 등 어떤 아이디어를 창의적으로 생산해내려면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다른 포맷을 머리에 넣고 흔들어라. 그러면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아이디어가 터져 나올 것이다. 여러분도 천재가 될 수 있다.
또 하나 비상시에 쓸 수 있는 방법(급한 아이디어가 필요하거나 개편 때)은 집에 케이블이나 위성이 연결돼 있으면 별 생각을 하지 말고 채널을 계속 돌려 보라. 조금씩 보면서 채널을 계속 돌려라. 관심 있는 것은 조금 더 보라. 영화, 스포츠. 코미디, 다큐멘터리, 시사 등등 깊이 생각하지 말고 그냥 스케치하듯이 보라. 여러분의 새로운 영감에 도움이 된다. 많이, 빨리 보면 뇌의 잠재의식이 자극을 받는다. 되도록 잠자기 전에 1~2시간 보고 그냥 자라. 여러분이 자는 사이에 본 프로그램은 뇌에 정리되어 어딘가에 저장된다. 그리고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아이디어로 떠오를 것이다.
참고문헌
- Mamet, David(1991). On Directing Film, New York: Viking Penguin.
- Wurtzel, Alan(1983). Television Production. McGraw Hill.
- Benson, Herbert(1976). The relaxation response. Harper Coll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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