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기획'이란 새로우면서 현실 가능한 프로그램을 위한 초안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수많은 PD와 작가들이 기획안을 만들어 낸다. 방송국의 봄·가을 정기 개편 때 가장 많은 기획안이 쏟아져 나온다. 성공적인 기획안이란 방송 프로그램으로 채택되거나 프로그램으로 제작하기로 결정되는 것을 말한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이렇게 해서 제작된 프로그램이 시청률 측면에서나, 시청자들의 기대치에서나, 방송사의 목표에서나 예상 수준 이상을 해냈을 때 이를 성공적인 기획안이라고 부를 수 있다.

1. 성공적인 기획의 조건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이것이 기획할 때 명심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현실적인 핵심 사항이다. 따라서 기획을 할 때는 항상 성공한 프로그램을 모니터하고 그 기획을 변형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천상천하 유일한 기획안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만용이다. 모방하라. 특히 정규물의 포맷을 만들려고 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문제는 '어떻게 모방하느냐'다. 여기에 기획의 핵심이 있다.

그리고 명심할 것은 기획안과 실제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기획은 서류이고, 프로그램은 생물(生物)이다. 좋은 기획은 변화 과정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단번에 성공적인 프로그램으로 정착을 하려면 선진국의 시스템처럼 오랜 시간에 걸친 프로그램 기획 절차에 따라 수정 보완 작업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기획과 제작의 시간적 간격이 없는 경우는 프로그램이 론칭된 후 수정 보완 과정을 거치게 된다. 따라서 현명한 기획자나 연출가는 이 과정에서 프로그램의 포맷을 완성시킨다.

나는 기획에도 운이 있다고 생각한다. 뛰어난 기획안이 연출자를 잘못 만나 실패할 수 있고, 뭔가가 있지만 엉성하게 작성된 기획안이 훌륭한 연출자를 만나 대박을 치기도 한다. 문제는 뛰어난 기획안이 뛰어난 연출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내용은 별 게 없는데 뛰어난 컴퓨터 실력으로 외형만 화려한 기획안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나는 두꺼운 기획안은 보지도 않고 던져 버린다. 자신 있는 아이디어는 A4 한 장에 다 담을 수 있다.

2. 기획 매뉴얼

창의적인 기획의 핵심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따라하더라도 창의적으로 변형시켜라 혹은 예능 시사 드라마 등 정통 포맷의 교집합을 적극적으로 찾아 결합된 기획을 하는 것이 좋다. 이 과정에서 현재 많은 피디들이 하는 포맷과 반대의 추세를 만들어 보라. 그리고 머리가 돌지 않으면 대형서점에 가서 힌트를 얻어라.

1) 창의적으로 모방하라
'창의'와 '모방'은 적대적이다. 창의성은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능력이고 모방은 남의 것을 베끼는 것이다. 그러나 창의성과 모방이 합쳐지면 창의성에 더 무게가 실린다. 우선 모방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모방하려고 하는 프로그램을 분석해야 한다. 그래야 같은 것을 찍어 낼 수 있다. 그러나 모방을 창의적으로 하려면 변형이 필요하다. 변형에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영화 〈트랜스포머(Transformer)〉를 기억하라. 어떤 형태로 변화하든 간에 반드시 원형이 있다. 그 원형이 어떤 경우에는 원형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까지 변형된다. 그것이 창의적 모방이다. 다른 프로그램 꼭지가 〈무한도전〉이 되고 그 〈무도〉는 〈1박2일〉로 변형된다.

창의성은 ① 다른 곳에는 없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만이 아니라 ② 기존에 있는 것을 변형시키고 ③ 조그만 것에서 큰 것을 찾아내고 ④ 큰 것에서 조그만 것을 뽑아내고 ⑤ 색깔을 변형시키고 ⑥ 모양을 변형시키는 등 변화가 빠른 독창성을 의미한다.

얼마 전에 본 기사 하나가 생각난다. 한국생산성본부에서 주최한 최고경영자 포럼에서 상상력만으로 1000억 원대의 자산가가 된 유석호 일경 대표가 한 말이다. 그는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7가지 기법으로 ① 더하기 ② 빼기 ③ 반대로 생각하기 ④ 축소 또는 확대하기 ⑤ 새로운 용도를 찾아보기 ⑥ 재료를 바꾸기 ⑦ 남의 아이디어 활용하기를 들었다. 프로그램이나 아이템 기획도 마찬가지다.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라.

그는 또한 아이디어를 죽이는 표현들도 소개했다. ① 그건 나도 알고 있어요 ② 전에 시도해 본 거예요 ③ 사장님이 안 된다고 하실 거예요 ④ 우리 분야가 아니에요 ⑤ 실행이 불가능해요 등이다. 당연히 이런 생각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남의 아이디어까지도 없애 버리기 쉽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머리를 유연하게 활용하라.

2) 정통 포맷의 교집합을 찾아라
모든 프로그램은 고유의 포맷에서 시작한다. 드라마, 음악, 예능, 코미디, 뉴스, 시사, 다큐멘터리, 교양 등의 포맷은 스스로가 고유의 표현 영역을 가지고 발전해 왔다.

그러나 이들 고유 영역이 겹치는 부분에서 새로운 기획이 탄생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라. 〈그것이 알고 싶다〉의 범죄 재연은 다큐멘터리와 드라마의 교집합이다. 예능에서 스타들의 생활을 집중 조명하면서 과거사를 다루는 부분에서 대역배우를 통한 재연은 역시 예능과 드라마의 교집합에서 탄생한 것이다. 재연 드라마의 본격 등장은 드라마의 확장이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의 드라마에로 영역 확장이다. 예능에서 리얼리티의 확장은 예능과 다큐멘터리의 교집합이 만들어 낸 새 포맷이다. 여러분도 사고의 영역을 넓혀 보라.

다큐멘터리, 시사, 예능, 드라마의 영역마다 고유의 프로그램이 기획될 수 있다. 그러나 기획의 묘미는 각 포맷 간의 교집합에서 적극적으로 나타난다.

나는 〈무한도전〉을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유재석 박명수 등의 등장인물들이 엮어내는 드라마다. 이들 등장인물들은 모두 주어진 캐릭터를 갖고 있다. 만일 〈무한도전〉이 다큐멘터리라고 한다면 내가 열거한 이 캐릭터들이 자신들의 본래 모습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들은 연출자가 자신들에게 부여한 드라마 속 캐릭터를 '예능적'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여기서 '예능적'이란 주어진 상황에서 동작과 멘트로 최대한 즐거움을 자아내는 것이다. 따라서 〈무한도전〉은 기획 면에서 보면 예능과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형식의 교집합으로 여기면 된다.

3) 현재의 추세를 거슬러라
기획을 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추세를 분석해야 한다. 현재 대세가 되고 있는 프로그램 포맷이나 내용은 분명히 이유가 있다. 우선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토크쇼를 예로 들어 보자. 현재 토크쇼의 추세는 다중 MC 내지는 집단 패널 토크쇼다. 원래 미국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잡아온 진행자의 퍼스낼리티에 의존하는 토크쇼가 한국에서는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 정도로 유연성과 지성을 겸비한 호스트를 찾기가 쉽지 않은 점도 있을 것이고, 호스트와 게스트 일대일의 단순한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하는 시청자의 냉담함 때문일 수도 있다. 문제는 호스트의 개성에 의존해서 초대손님의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전형적이면서도 전통적인 토크쇼가 자리를 못 잡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 하여튼 일대일의 추세를 뒤집은 것은 집단 토크쇼다. 혹은 보조진행자 몇 명을 옆에 데리고 하는 다중MC 토크쇼다.

이렇게 일대일 토크쇼에서 다중MC 혹은 집단 토크쇼로 변환하는 것은 현재의 추세를 거스른다고 하겠다. 아주 괜찮은 퍼스낼리티가 등장하면 집단 토크쇼는 일대일 토크쇼로 다시 추세가 바뀔 것이다. 이것도 현재의 추세를 거스르는 것이다.

로맨틱 코미디가 추세인 드라마가 멜로로 바뀌고, 멜로는 다시 로맨틱 코미디로, 정통사극에서 퓨전사극으로, 정보에서 시사로, 가벼운 정보 프로에서 무거운 시사정보 프로로, 스튜디오 예능에서 리얼리티로, 혹은 그 반대로. 추세는 계속 바뀐다. 문제는 바뀌는 시점이 언제일까를 예측하는 안목이 있느냐는 것이다.

4) 정답은 대형서점에 있다
여러분은 기획 아이디어를 어디에서 찾는가?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정보의 바다에서 아이디어를 찾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디어는 대형서점에서 찾을 것을 권한다. 사람들의 살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곳, 사람들의 소곤거림이 들리는 곳, 전자파가 없는 곳, 서점에 기획 아이디어가 넘쳐난다. 그리고 반드시 대형서점을 권한다.

서점에 가면 우선 시원한 음료수 한 병이나 커피를 들고 책 제목을 훑어 본다. 최근 베스트셀러부터 보라. 책 제목에 큰 기획이 있다. 관심이 있는 책은 집어들고 머리말을 읽는다. 여기에 기획 의도가 있다. 목차는 큰 틀의 구성안이다. 책은 작가가 오랫동안 준비해 온 자료를 창의적으로 정리해 놓은 것이다. 목차를 읽으면 이야기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가 일목요연하게 들어온다. 그 책의 주제에 관심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저자에게 전화를 걸든지 만나라.

3. 성공적인 기획과 '생존'·'경쟁' 본능

미국 CBS의 〈서바이버(Survivor)〉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이 프로그램은 기존의 흔한 게임 프로그램에 오지 탐험과 리얼리티 그리고 상금 100만 달러가 결합된 것이다. 프로그램 포맷은 매주 한 시간을 방송할 때마다 참가자의 투표를 거쳐 한 명씩 탈락시키게 되어 있다. 덕분에 매회 끝 부분 투표가 있을 때마다 시청자들은 과연 이번에는 누가 떨어질까 긴장하게 된다.

어느 나라든지 경쟁해서 승자를 뽑는 포맷은 존재한다. 승자를 뽑기 위해서는 경쟁을 해야 하고 시청자들은 그 경쟁을 보면서 즐거워한다. 누가 승자가 될 것인지를 예측하는 것은 항상 재미있다. 하지만 문제는 어느 나라에나 있는 퀴즈 프로그램이나 게임 프로그램을 '어떻게 새롭게 기획하느냐'다. 그래서 퀴즈와 리얼리티가 결합하고, 출연자들이 여러 형태로 바뀌는 것이다. 더 새로운 기획은 없을까?

네덜란드의 세계적인 포맷 기획사인 '엔데몰(Endemol)'은 지금까지 했던 기획 중 가장 획기적인 것으로 〈빅 브라더(Big Brother)〉를 꼽았다. 방이 많은 큰 집 안에 여러 캐릭터의 연인과 독신들을 함께 살게 하고 이들이 벌이는 사랑과 애증을 곳곳에 감추어진 CCTV를 통해 보여 주는 포맷이다. CCTV로 보는 리얼리티 드라마와 비슷하다. 창의적인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프로그램 기획에서 '창의성'이란,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지만 흔히 발생하지는 않는 일을 형상화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싸움, 살인, 치열한 경쟁, 사기, 애정과 증오, 선행, 기증 등이 그것이다. 이를 '본능'이라는 관점에서 정리하면 '섹스'와 '생존'이 된다.

'경쟁', '생존', '섹스', '선행', '살인', '사랑'의 범주에서 인간의 행동과 사고를 판단해 보라.

인기 있고 시청률이 높게 나오는 프로그램은 그것이 드라마든, 다큐멘터리든, 시사든, 교양이든, 예능이든, 어떤 포맷이든 이들 요소들로 연결된다고 보면 된다.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정도의 차이이고, 나라에 따른 문화의 차이일 것이다. 문제는 기획을 할 때 어떻게 이들 요소들에서 리얼리티를 찾아내고, 이들의 관계를 정립하고, 갈등과 그것의 해소를 스토리로 담아 내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는 것이다.


반응형

'Camera' 카테고리의 다른 글

3. 구성  (0) 2013.02.01
2. 창의적 연출  (0) 2013.02.01
Sony XDCAM PMW-200  (0) 2012.12.06
소니, 하이엔드 XDCAM HD422 캠코더 PDW-F800 사용기  (0) 2012.11.14
필름의 노출 조정  (0) 2012.11.14

+ Recent posts